삶이라는 게임

생각 철학

1.

두 종류의 게임이 있다. 하나는 유한 게임, 다른 하나는 무한 게임이다. 유한 게임은 게임의 승리를 목적으로, 무한 게임은 게임의 지속을 목적으로 한다. 유한 게임은 규칙과 경계 조건으로 정의되고, 무한 게임은 정의될 수 없다. 우리 인생은 무한 게임이다. 삶에는 오로지 삶의 지속을 위한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인생 안에서 수많은 유한 게임이 진행된다. 하지만 모든 유한 게임은 자발적 선택으로만 플레이된다. 우리는 게임의 지속을 위한 유한 게임을 선택할 수 있고, 게임의 승리와 패배는 플레이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가 무한 게임의 플레이어임을 잊는다. 인생을 유한 게임으로 생각하며, 심지어는 우리가 유한 게임을 직접 선택했음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각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이 규정한 제한과 기대에 둘러싸이고, 우리는 그 역할 수행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된다. 유한 게임의 성공은 경쟁적인 용어로만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을 더욱 의식하고 조급해진다. 종국에는 예상했던 게임의 마지막 장면이 오지 않을 때 쓰라림과 허망함을 느낀다.

2.

내가 예상했던 우리 창업팀의 마지막 장면은 태초마을에서의 결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팀을 나오게 되었다. 25년 4월에 결성했으니 1년 조금 넘게 함께한 셈이다. 워렌 버핏의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 서비스의 기본 전제가 하나둘씩 무너져 피봇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나서야 발가벗은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팀 내 묻어두었던 욕망과 AI 시대에서의 고민은 다시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릴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첫 번째 창업을 마무리했다. 별다른 흉터 없이 잘 끝냈지만, 현 상황은 팀에서 나올 때 기대하던 장면이 아니었기에,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려왔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허탈함이 들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한 달에 얼마를 벌었다느니, 투자를 받았다느니 이야기를 듣는데 나는 한참 뒤처진 느낌이었다. 빨리 창업이라는 게임을 재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인테리어 사무소 같은 소규모 서비스 사업체의 마케팅을 돕는 에이전트, 블루칼라를 위한 듀오링고, 옷장 기반 패션 쇼핑 에이전트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리서치했다. 나름 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는데도 그 아이디어를 적어도 10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시작할 수가 없었다. 미래의 내가, 물이 빠졌을 때 또 다시 빠져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까봐 두려웠다.

3.

이 무렵 여자친구와도 이별했다. 창업 이후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인 채 코파운더와 여자친구만 곁에 두고 지내왔던 터라, 이제 둘 다 없으니 완전히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집 앞 카페에 멍하니 앉아 책장을 넘기다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따라왔던 삶의 원칙은 더 이상 내게 맞지 않았다. 삶에 부여한 의미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창업을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떤 도메인에서 어떤 아이디어로 다시 창업을 할지 정하는 건 그 다음 문제였다.

4.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삶에서 임팩트가 컸던 사건을 추리는 것이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파고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나씩 가면을 벗겨가며 욕망과 행복의 원형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세운다면, 내가 왜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니, 내가 품은 욕망의 상당수는 정작 내 것이 아니었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타인이 규정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욕망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챙기려고 하면 아무것도 챙길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정말 중요한 소수의 욕망만 남기고, 해소하거나 버리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해소한 욕망 중 하나는 부모님께 하루빨리 보답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학창 시절, 부모님은 빠듯한 형편에도 나에게 많은 투자를 해주셨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게 없어 더 많이 해줄 수 없음을 미안해하셨다. 부모님의 헌신이 너무나도 감사하기에, 부모님이 나이가 들기 전에 얼른 금전적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좋은 차와 좋은 가방을 사드리고 싶었다. 또 부모님께 더욱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결핍감은 내 결정에 영향을 계속해서 미쳤다. 하루빨리 큰돈을 손에 쥐어야 한다는 생각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그래서 이 욕망은 버려버리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께 이 욕망을 내려놓으려 한다고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언제나 그랬듯 내 행복을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하나 덜었다.

반면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기” 같은 근원적 욕망도 있었다. 나는 남이 하지 말라고 해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시도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고, 하나에 몰입해 인생을 거는 경험도 해보고 싶으며, 세계 곳곳의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싶다. 이번 생에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나는 남들보다 많은 호기심을 가진 것 같다. 처음 개발을 시작한 것도, 스타트업을 들어가게 된 계기도 별다른 생각 없이 단순 호기심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 뒤에도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여러 욕망을 덜어내는 과정에서도 이것만큼은 놓을 수 없기에 높은 우선순위에 배치했다.

압축한 핵심 욕망들은 재미있게도 세 가지 공통 기저를 가졌다. 첫째는 ‘아름다움’, 둘째는 ‘성장’, 마지막으로 ‘공동체 기여’다. 가령 다양한 경험에 대한 욕망은 아름다움과 성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욕망은 아름다움과 공동체 기여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더 이상 환원하지 못하는 내 안의 욕망의 원형인 것 같다.

5.

나를 움직이는 욕망을 찾았지만 이게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행복 극대화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행복은 부산물과 같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에는 그게 행복임을 느끼지 못한다. 지난 시간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나서야 행복이 된다. 사후적 해석은 삶을 이끄는 목적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왜” 라는 질문 자체가 모순적임을 깨달았다. 사물은 어떠한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기에 본질이 존재에 앞서지만, 인간은 존재가 앞선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냥 던져졌다. 내가 태어난 근원적인 이유는 빅뱅으로 우주가 생겼기 때문이고, 빅뱅이 왜 발생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주에는 목적이 없듯이, 인간에게 부여된 삶에도 목적이 없다. 일론 머스크 같은 위대한 인물도 역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본인이 가진 가능성을 적극 활용해 목적을 가진 유한 게임에 플레이어로서 참여했고,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어떤 목적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6.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삶의 목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다는 사실만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는 그 어떤 목적이든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믿는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당신이 믿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는 논리를 펼쳤다. 내가 믿고 있음을 지각하는 순간, 믿음은 내가 취하고 있는 하나의 태도로 격하되기 때문에 완벽한 믿음이란 없다. 즉, 어떤 믿음(목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차피 모든 목적은 내가 결정한 것이니, 그저 내 안의 욕망을 잘 만족하는 유한 게임들을 선택하고, 즐겁게 플레이하면 된다. 내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과거에서 의미를 찾을 때, 그 의미는 과거를 해석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온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한 게임 플레이어로서 미래를 열어두고 현재의 순간을 즐길 때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기고, 그렇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7.

언젠가 물이 다시 빠질 것이고, 그때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려움과 기대감은 결국 같은 감정임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세우고, 아름다움, 성장, 공동체 기여를 좇아 즐겁게 플레이하다 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인생은 무한 게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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